서양의 중세는 4~5세기부터 14~15세기까지의 약 1,000년에 해당하는 기간을 의미한다. 서로마제국이 붕괴하는 시기에서 동로마제국의 붕괴까지를 의미하기도 하며, 313년 기독교 공인 이후 십자군 전쟁을 거쳐 14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시점을 포괄하기도 한다. 이 시기는 발트해 연안의 게르만족이 훈족의 침입과 농경지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서유럽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봉건제도가 성립되는 것을 사회경제적 배경으로 한다. 또한 이 시기는 교황권이 절대적 지위를 차지하던 기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서양의 중세 시대에는 세속적이며 형식적인 교육의 발달보다는 기독교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교육의 명맥을 유지하였다. 중세 초기의 교육기관으로는 수도원학교가 대표적이며, 교육은 수도사들을 중심으로 한 교육과 외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외부 기독교 교육을 실시하였다. 수도원학교들은 자급 자족적 공동체로 대부분의 생활을 수도원 내부에서 했으며, 고전 필사본들과 도서관들의 문서 보존의 기능을 하는 데 기여하였다. 중세 후기에는 성당에 부속된 사원학교들에서 성직자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이 기관들에서는 신학이 활발하게 연구되어 스콜라 철학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일부 사원학교는 후일 대학으로 전환되었다. 기독교 교육이 형식교육이었다면, 이 외에 기사 교육이나 도제교육 등도 비형식 교육으로 진행하였다. 기사 교육은 기사, 즉 지배계급 양성을 위한 비형식 교육제도였다. 봉건영주와 가신 간의 보호 및 복종 관계의 기초 위에서 새로운 기사를 양성하는 제도로, 기독교적 신앙심과 기사 문화를 전수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아동기부터 귀족들의 시중을 들며 귀족 문화의 기본을 익히고 무예를 본격적으로 훈련한 후 정식 기사가 되는 과정을 거쳤는데 이는 후일 서양 신사도(gentlemanship)의 기초가 되었다. 도제제도는 십자군 전쟁 전후로 도시가 발달하면서 도시 중심으로 활동하던 장인들이 조합을 만들며 재생산기능을 담당하던 제도였다. 도제로서 장인에게 양성되는 과정을 거쳤는데, 기술뿐 아니라 도덕적 수련도 함께 받았다. 일정한 훈련과정을 거치고 직공이 되면 임금을 받으며 자유롭게 일하다가 조합의 정식 구성원이 되기를 원하면 작품을 제출해야 했는데 이 작품을 인정받게 되면 장인이 될 수 있었다. 중세 시대 대학에서는 신학, 법학, 철학, 의학 등의 전문학부들이 있었으며 자유학과들을 중심으로 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자유 학과들을 이수한 사람들은 일종의 교수자격이 주어졌는데 지금의 석사학위를 의미하는 master였다. 그 아래 학사는 3년 정도 기본교육을 이수한 자에게 부여하였고, 보조 교수의 자격을 주었다. 대학 수업의 수업과 시험은 주로 논쟁과 변론을 통한 방식이었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는데 교육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인간적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인문주의 교육에 대한 관심으로 라틴어 중심의 고대문화 학습을 위한 학교들이 설립되었다. 대표적인 중등학교로는 독일의 김나지움, 영국의 그래머스쿨, 프랑스의 리세가 있다. 인문주의 중등학교들은 현재처럼 청소년기 학생들만 대상으로 하는 학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그 목적과 교육내용에서 중등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문주의 학교들의 취학연령은 7세에서 21세까지이며 다른 교육기관들과 교육이 중복되고 병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인문주의 학습을 위해 라틴어를 중심으로 하는 중등학교와 또한 모국어를 중심으로 하는 대중적인 학교가 형성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유럽 교육제도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복선제의 기초가 되는데, 복선제란 두 개의 갈림길을 의미한다. 인문주의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빠르게 전성기를 누렸는데, 이는 지정학적 조건으로 도시의 발달이 빨랐기 때문에 알프스 이북 지역보다 100~200년 빠르게 전성기를 이루었다. 알프스 이북의 국가들에서는 개인 중심적으로 나타났던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에 비해 사회 개혁적 경향으로 나타났으며 종교개혁과 시기적으로 병행되었다. 종교개혁은 타락하고 부패한 교황 중심의 교회로부터 신앙을 회복하고자 한 운동으로, 마틴 루터(Martin Luther)와 칼뱅(Jean Calvin) 등을 통해 구교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종교개혁 과정에서 나타난 대중교육에 대한 강조와 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라는 이념이 부각되었다는 점에서 교육사에서도 종교개혁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당시의 성경은 모두 라틴어로 되어 있어, 라틴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성직자의 해석이 없이는 성경을 읽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부정부패가 심해졌고, 라틴어 대신 모국어로 성경을 번역하며 대중들이 직접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변화시켰으며 해석을 위한 기본적 문해교육을 강조하였다. 루터는 가족이 신앙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가장이 수행해내고 있지 못함을 보며 국가가 그 책무를 위임받아서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교황권과 대립하는 국왕권의 확장을 위해서도 군주들의 이해관계와 루터의 입장이 일치하였기에 개신교 국가들에 의한 대중교육은 더욱 확산하여 각종 법령 등으로 구체화하여 실천되었다. 이 시기를 통해 국가 차원의 관리되는 교육체제인 공교육의 개념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종교개혁기에 만들어진 학교와 법령들은 공교육 확대의 주요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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