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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

교육학 - 서양의 전통적 교육

by 똑똑한우주맘 2022.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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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교육의 역사를 보면 고대 그리스시대와 로마 시대의 교육으로부터 시작되어 살펴본다. 그 당시의 문명과 발달한 교육이 현재의 서양 교육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전통적 교육은 주로 고대, 중세, 르네상스 및 종교개혁 세 가지 시대로 나뉜다.

먼저 고대 그리스의 교육은 서양 교육의 원류를 형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대표적 폴리스들인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기본적 운영방식에서 대조를 이룬다. 아테네에서 초기에는 주로 김나지움(공공체육관)으로 불리던 장소를 중심으로 체육과 음악 등의 교육이 실시되었다. 이후 페르시아 전쟁이 일어난 기원전 5세기경을 전후로 신흥지식인층에 의한 학문 지식의 발달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소피스트(Sophist)로 불린 지식인층이 청년들의 교육에 관여하며 여러 교육적 변화들이 나타났다. 이 시기 이후에 기존의 자연철학에서 인간 중심의 철학으로 중요성이 이동하였고, 기존의 음악과 체육 위주의 교육에서 지식적 탐구 중심의 교육으로 변화되었다. 이 시기 이후 소크라테스(Socrates), 플라톤(Plato),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이소크라테스(Isokrates) 등의 학자들이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스파르타는 강력한 국가의 관리 아래에 집단주의적 교육을 실시하였다. 스파르타에서는 리쿠르고스 법전에 의해 사회제도의 기본을 명시하고 있고 용감하고 체력이 강인한 시민의 양성을 위해 부부와 가족 등에 대해서도 국가가 철저히 규제하였다고 크세노폰(Xenophon)에 의해 전해졌다. 크세노폰은 스파르타에 망명했던 아테네인으로 아테네의 민주정치에 비우호적이었으며 군사주의적 교육을 이상으로 생각하는 입장을 제시한 인물이다. 스파르타의 교육은 인간중심의 사적인 이익보다는 국가 차원의 공공적 이익을 추구하며 또한 이에 봉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정리하면, 아테네는 시민의 부에 기반을 둔 자유경쟁을 중심으로 재력가를 중심으로 교육을 진행하였고, 스파르타는 모든 것을 국가가 관리하였다. 고대 시대에는 서양 교육의 기본교과인 7개의 자유 학과의 원형이 형성되었다. 7개의 자유 학과는 언어를 중심으로 하는 문법, 수사학, 논리학 세 과목과 수를 중심으로 하는 네 과목인 대수, 기하, 천문, 음악으로 구분된다. 특별히 수를 중심으로 하는 네 과목을 추상적 기호로 구성된 감각 이상의 이성적 진리에 접근하기 위한 매개이며, 객관적이고 불변적인 진리의 속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여겼다. 이는 서양 교육에서 궁극적 이상이 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토론과 논증을 통해 당시 청년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또한 플라톤도 그의 저서에서 불변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를 찾는 문제를 스승 소크라테스와의 대화로 묶어 자신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플라톤은 그의 대표작 '국가론'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국가의 이상적 실현을 주장하고 있는데, 인간의 본성은 차등적으로 형성되어 모두 다른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데 현실에서는 본성과 능력으로 지위가 형성되기보다 세습에 의해 지위가 형성되는 것을 보고 이는 잘못된 사회를 형성한다고 생각하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본성과 능력에 따라 사회적 역할을 부여받아 이상적 사회질서를 형성하기를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아테네의 교육방식보다 스파르타의 교육방식에 관심을 가졌고, 공동양육과 공동교육을 주장하였다. 그리스 시대를 대표하는 또 다른 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는 달리 이데아와 현상은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주장으로 그는 현상 탐구와 이성적 탐구를 결합하며 인간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추구하기 위해 도덕과 지성을 강조하였고, 도덕적 차원에서는 실천적인 앎을 추구하였으며 덕목에 도달하기 위하여 '중용'을 중시하였다. 그는 서양 교육사 관점에서 중요한 학문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노동하지 않는 삶 혹은 여가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이다. 그는 여가를 통해 순수한 관조에 의한 이성적 학문이 가능하다고 보았으며, 인간의 덕을 실현하기 위한 이상적 학문은 '다른 것의 수단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인 학문'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서양교육관의 기본적 학문관을 세우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고대의 교육은 공동체를 잘 통치할 수 있는 지도자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대두되었던 것이 '수사학'이다. 수사학은 언사의 수식이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영향을 끼치기 위한 언어기법을 연구하는 학과이다. 플라톤과 동시대 사람이었던 이소크라테스는 말은 인격의 표현이며 지도자의 자질로 도덕적 웅변을 강조하였다. 이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어떤 점에서도 다른 피조물보다 더 우수하지 않지만, 인간에게는 서로를 설득하는 힘이 있으며, 서로에게 분명히 의사를 밝힐 수 있는 언어가 있기 때문에 들짐승의 생활을 피해왔을 뿐만 아니라 도시도 세우고 법도 만들고 각종 재주도 고안해 냈다고 하였다. 그리고 말의 힘이 있기에 무지한 사람을 교육하고 현명한 사람을 평가하며 참되고 합법적이며 공정한 이야기는 훌륭하고 성실한 영혼의 외적 이미지라고 하였다. 수사학에 대한 강조와 중요성은 고대 그리스 뿐만 아니라 로마에까지 이어져, 특히 제정 시기에는 로마에서 학교가 발달하여 루두스(Ludus)라고 불리던 초등학교에서 시작하여 수사학교, 문법학교, 전문학교 등으로 이어지는 학교 체계를 갖추었다. 특별히 수사학교는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었다. 로마 시대의 수사학을 강조한 인물로는 키케로(Cicero)와 퀸틸리아누스(Quintilianus)등이 있으며 키케로는 라틴어를 발달시키고 후에 르네상스기의 모범이 되었으며 퀸틸리아누스는 '웅변 교육론'이라는 책을 써서 교육의 원리와 방법에 대한 내용을 기술한 수사학교의 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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