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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

교육학 - 교육의 비유 세가지

by 똑똑한우주맘 2022.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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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관점에서의 교육이란, 교사나 부모가 자녀나 아이를 가르치고 기르는 것과 또한 아동의 잠재적인 능력을 잘 끌어내어 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두 가지의 의미를 모두 갖고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주형의 비유'라고 하고, 후자의 경우는 '성장의 비유'에 해당한다. 두 가지의 비유 모두 교육의 어원에서 비롯된 것인데, 고전주의 교육관과 인간중심의 낭만주의 교육관 시대에 어느 한쪽이 더 발달하여 나타나기도 하였다.

먼저 주형의 비유는 가장 오랫동안 영향을 끼쳐온 비유로, 상식적이며 전통적인 교육관을 드러내고 있다. 주형이란, 거푸집에 쇳물이나 진흙을 부어서 굳혀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데 인재를 양성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 비유에서 자녀나 아동은 쇳물이나 진흙에 해당하고, 내용물을 부어서 만드는 사람을 부모나 교사에 해당한다. 이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교육 대상은 제작자의 의도와 방법에 따라 변화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전통적인 비유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로크(John Locke)를 들 수 있는데, 그는 아동의 마음은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는 흰 종이와 같아서 아이의 경험과 교육자의 정보제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주형 비유의 형태로는 행동주의 교육관이 있는데, 행동주의자들은 S-R 이론(자극과 반응 이론)에 따른 조건화를 통해 어떤 모양이든 원하는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두 가지 교육론은 왓슨의 '교육만능설'을 가정하고 있는데, 교육만능설은 건강한 신체를 가진 아이에게 적절한 장소만 제공해 준다면 원하는 어떤 아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정이다. 과거 한국에서의 '주입식 교육'도 주형비유에 해당하며 신체를 운동으로 단련하듯이 마음의 능력(지각, 상상, 감정, 의지 등) 또한 단련해야 한다고 보는 '도야의 비유'도 주형 비유에 해당한다. 주형의 비유는 교육자가 교육 대상에게 가르치고 또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점에서 상식적인 교육관이다. 하지만 이 비유는 교육 대상을 능동적인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고,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보고 있기 때문에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잘못 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는 교사가 잘못된 권위주의에 빠지거나 도덕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두 번째는 성장의 비유로, 주형의 비유와는 반대개념을 가진 비유이다. 성장의 비유는 식물이 최적의 환경에서 스스로 잘 자라가듯이 교육 또한 교육 대상이 가지고 있는 잠재 능력을 스스로 자연스럽게 잘 성장하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육 대상은 식물에, 교사는 정원사에 해당하는데, 교사는 단지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거나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교육관'이 있는데, 루소의 교육관은 책 '에밀'에 잘 드러나 있다. 루소는 나쁜 영향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고 자연적 성장을 격려하고 도모하는 것을 교육으로 보았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아동이 발달하는 단계마다 성장 과정을 자세하게 연구하고 기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두 번째 예시로는 '진보주의 교육관'을 들 수 있다. 진보주의 교육관은 '아동 중심 교육'을 표방하고 있는데, 이는 아동의 내면적 성장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진보주의 교육관은 'We teach children, not subjects' 슬로건에 잘 드러나는데, '우리는 교과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동을 가르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성장의 비유에서는 주형의 비유와 달리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가 아닌 '누구를 가르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학생의 자율성에 반해 교사의 권리가 축소된다는 점에서 교사의 역할이 간과되고 있어 우려되는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세 번째 비유는 대안적 비유로 묶이는 '예술의 비유, 성년식의 비유, 만남의 비유'다. 주형의 비유와 성장의 비유 모두 전형적인 비유이지만, 간과할 수 없는 큰 한계를 가지고 있어,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타난 대안적 비유이다. 먼저 '예술의 비유'는 예술가가 예술작품을 만들 때 고려하는 모든 과정을 담고 있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들기 위하여 자기 마음대로 재료를 마구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재료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질들을 모두 고려하여 작품을 만든다. 이처럼 교사와 학생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교사의 마음대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관계라는 점에서 대안적 비유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주체가 교사라는 점으로 보았을 때, 주형 비유에서 변화된 형태로 본다. 대안적 비유의 두 번째인 '성년식의 비유'는 미성년자가 성년식을 거쳐 진정한 사회의 일원으로 입문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비유는 교육 방법을 간과한 주형 비유의 한계와 교육내용을 간과한 성장 비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성년식 비유는 인류문화 유산을 강조하고, 교육내용에 따라 교육 방법이 나온다는 점을 강조함에 따라 예술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주형의 비유를 변형한 것으로 본다. 대안적 비유의 세 번째인 '만남의 비유'는 앞에서 설명한 비유들과는 매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만남의 비유는 마치 종교적 만남이나, 실제로 사람과의 만남처럼 인격적인 만남이 비약적인 발전과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특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비유는 교육적인 측면보다 관계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어, 일종의 요행주의로 변모할 수 있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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