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을 살며 우리는 형식, 비형식, 무형식의 맥락을 횡적으로 가로지르며 학습한다. 또 우리는 요람에서부터 무덤에 이르는 인생의 종적인 과정을 관통하며 학습한다. 이런 학습의 종적인 측면과 횡적인 측면을 포괄하는 용어가 평생학습이다. 평생학습에서 '평생'은 곧 '삶 전체'를 의미한다. 이는 삶과 학습의 긴밀한 관계를 나타낸다. 한 인간이 어떤 학습을, 어디에서, 어떻게, 왜 하는가, 그리고 그 학습의 결과가 무엇인가를 탐색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생애의 중요한 한 측면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학습은 학교 등 형식교육 장면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학습자가 전혀 예기치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뜻밖의 사건으로 경험되기도 한다. 때로는 이런 예기치 않은 학습이 우리의 생애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애플컴퓨터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대학을 중퇴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중퇴생으로서 그는 친구의 기숙사에 얹혀살면서 대학에 개설된 강좌 중 마음에 드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그때 들었던 강좌 중 하나가 서체 강좌였는데, 그는 훗날 매킨토시 컴퓨터의 유려한 서체를 만드는 데 이 강좌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이 서체 강좌를 다시 수강할 당시 그는 그 강좌가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알지 못했다.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이 사건을 예로 들며, 그는 한 가지 학습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항상 과거를 회고하며 돌아볼 때만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1월에 뉴욕시의 허드슨강에 극적으로 비상 착륙했던 US에어웨이 1549편에 탑승했던 릭 엘리어스(Ric Elias)는 2011 TED 콘퍼런스에서 추락하는 비행기 속에서 배운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첫째, 3,000피트 상공에서 폭발음이 들린 뒤 비행기가 엔진을 끄고 비상착륙을 시도할 때, 그는 무엇보다도 모든 것은 순식간에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둘째, 비행기가 허드슨강을 따라 하강하며 워싱턴 다리를 지나 강물을 향할 때, 그는 중요하지 않은 일로 시간을 낭비하면서 자신에게 중요한 아내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자신을 알게 되었다. 셋째, 그는 비행기가 강물 위로 착륙을 시도할 때 비행기가 곧 산산조각이 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놀랍게도 죽음은 별로 두려운 것이 아니었으며 오직 자기 딸이 성장하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을 몹시 슬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극적으로 생명을 구한 뒤, 이 세 가지 배움 때문에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추락하는 비행기 속에서의 배움을 되새기며, 그는 더 이상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지 않게 되었다. 그는 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아 그날 이후로 아내와 싸우지 않게 되었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보다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를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이를 실천하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와 릭 엘리어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학습과 삶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인간의 삶은 어쩌면 학습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분명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학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은 학습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만한 상태에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학습으로 연결되는 경험들은 개개인 그리고 개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삶이 어떤 경로를 만들어 왔는지를 보여 준다. 평생에 걸친 학습이 만들어 내는 이런 삶의 길을 '학습 생애 경로(learning life course)'라고 부를 수 있다. 우리는 인생의 경로를 배움의 단계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학교 제도가 발달하면서 '유치원생-초등학생-중학생-고등학생-대학생-대학원생' 등 학교급에 따라 생애 전반부의 정체성을 제시한다. 공자는 한 인간의 전 생애를 나이에 따라 '지우학-이립-불혹-지천명-이순-종심'으로 제시한 바 있는데, 이는 연령에 따라 성취해야 할 배움의 수준을 제시한 학습 생애 경로의 한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학교 교육 이수-졸업-취직-결혼-자녀 출산-양육-노화'라는 일반적인 생애 경로를 염두에 두고 각각의 단계에 필요한 학습 과업을 달성하고자 노력한다. 생애 경로는 대개 연령과 연계되어 선형적인 형태로 그려진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이 생애 경로를 따라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동일한 생애 경로를 따라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구직난이 심해지면서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졸업을 미루고 인생에서 학생으로 지내는 기간을 늘리고 있다. 맞벌이 가정과 이혼 가정의 급증은 자녀의 양육방식에 큰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아예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첫 직장에서 은퇴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전직과 이직이 일반화되었다. 고령화사회의 도래로 자신을 노인으로 인정하는 나이도 많아지고 있다. 이런 생애 경로의 변화와 더불어 정보화시대, 지식경제시대로 대표되는 새로운 사회적・경제적 패러다임의 대두는 각각의 생애 단계에서 필요한 학습의 양상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생애 전반부에 습득하고 참여하는 학습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전형적이라고 여겨지던 생애 경로로부터의 이탈이 일상화되면서 스스로 생애 경로를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요구와 압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또, 우리는 주어진 생애 경로를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애 경로를 직접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개개인은 자기 삶의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평생에 걸쳐 자기 삶을 써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학습의 의미를 보다 적극적으로 포착하려는 개념이 평생학습이다. 학습의 습득, 참여, 창조라는 세 가지 은유는 생애 경로의 다양한 형성과정에서 학습활동의 의미와 역할을 보여 준다. 식물학에서는 뿌리이면서 동시에 줄기인 것이 땅속에서 수평적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리좀이라고 부른다. 학습은 식물을 뿌리이면서 동시에 줄기인 리좀처럼 학습자가 자신의 외부와 끊임없이 수평적으로 퍼져나가며 접속하는 활동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접속을 위한 인간 활동은 때로는 습득으로, 때로는 참여로, 때로는 창조로 포착할 수 있다. 물론 습득, 참여, 창조 외에도 학습자가 처한 삶의 맥락에 따라 평생학습을 포착하는 다른 은유들도 가능할 것이다. 특히 학습자 스스로가 지나간 삶 속에서 경험한 평생학습과 생애 경로의 관계를 성찰하며 삶과 학습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만의 고유한 은유를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생애 경로에서 경험한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의 이행, 이행 과정에서 자신의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간은 자신을 만들어 온 학습에 관한 이야기를 구성하며 인생 자체의 의미를 찾는다. 이 측면이 인생 자체가 학습의 대상이 되는 평생학습의 측면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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